장미빛 구호와 냉혹한 현실의 충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수 있았던 비결은 다름 아닌 ‘경제 대통령’ 이라는
강력한 프레임 덕분이였다.  지지자들은 그가 제조업을 부활시켜 전례 없는 경제 성장을 이루고,
‘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MAGA) ‘ 만들겠다는 호언장담을 굳게 믿었다.

그 약속 앞에서는 트럼프를 둘러싼 수 많은 논란이나 부정부패 의혹쯤은 얼마든지 눈감을 수
있다며 표를 던진 것이다.

정권 초기에는 실제로 효과가 나타나는 듯했다.  대규모 법인세 감세와 과감한 규제 완화
조치 덕분에 글로벌 기업들의 미국행 투자가 줄을 이었고, 미국 내 제조업 일자리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게다가 트럼프가 주도한 강력한 관세 정책으로 인해 국가의 관세 세입 역시 기록적인
수치로 증가했다.  트럼프노믹스의 장미빛 미래가 눈앞에 다가온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 뒤에 숨겨진 모순들이 드러나느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일관성 없는 무차별적 관세 정책은 글로벌 유통망의 발목을 잡으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올해 초 터진 이란과의 군사적 충돌은 국제 유가를 폭등시켰고, 이미 불안정한
미국 경제에 거대한 인플레이션 불똥을 던졌다.  결국 그 고통은 고스란히 서민 경제의 몫이 되었다.

부채 폭증, 고물가, 고금리라는 삼중고에 시달리는 미국 경제,
과연 국민들은 다가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어떤 평가를 하게 될까 ?

맘모점보가 되어버린 관세 정책과 부채의 덫

트럼프노믹스의 본질은 정확했다.  제조업을 부활시키고 관세 수입을 늘려 정부의
나라살림 적자를 줄이고, 이를 통해 미국 경제를 건전하게 만들겠다는 전략이였다.

실제로 정권 초기부터 백악관 관료들은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쏟아냈다.
그중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이 내놓은 핵심 카드가 바로 ‘ 3-3-3- 정책’이였다.  이 정책의
첫번째 골자가 바로 당시 GDP 의 6%에 육박했던 심각한 재정 적자를 3% 수준으로 반토막
내겠다는 약속이였다.

여기에 힘을 보태겠다며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정부효율부 (DOGE) 가 출범해 불필요한
정부 기관과 정책을 정리하겠다며 무려 2조 달러의 예산 절감을 호언장담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도는 수 많은 부작용과 반말만 낳은 채,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흐지부시
폐쇄되는 결말을 맞았다.

가장 결정적인 타격은 트럼프가 그토록 ‘ 아름다운 단어’ 라며 찬양했던 관세 정책에서
터져나왔다.  올해 연방 대법원이 ‘ 대통령에게 무차별적인 관세를 부여할 법적 권한이 없다’ 고
위헌 판결을 내리며 제동을 걸기 전까지는 분명 기록적인 관세 수입을 올렸다.

하지만 관세로 아무리 수 백 억 달러를 벌어들여도 트럼프 행정부가 동시에 감행한 조 단
위( 달러 ) 의 대규모 감세와 방만한 정부 지출로 생긴 거대한 재정 구멍을 메우기엔 역부적이였다.

오히려 관세 폭탄은 미국 소비자 물가를 사정없이 끌어올렸고, 상대국의 맞불 관세로 인해
미국 농가들은 극심한 보복 관세 피해를 입었다.  당황한 정부는 농가에 수 백억 달러의 보조금을
추가로 지급하며 지출을 늘려야 했고, 급이야 물가를 잡겠다며 아르헨티나 소고기 수입 규제를
푸는 촌극을 벌였다.  ‘ 미국 산업을 보호하겠다 ‘ 던 관세 정책이 물가가 폭등하자 ‘ 외국산을
수입해 물가를 잡겠다 ‘ 는 모순으로 이어진 것이다.  결국 이는 네브라스카 등 핵심 지지 기반인
축산 주 농민들의 거센 반발을 불어왔고, 트럼프는 뼈아픈 정치적 대가를 치러야 했다.

여기에 이란 사태로 촉발된 에너지 쇼크의 장기화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부었다.

현재 미국의 소비 시장은 여전히 탄탄하다.  그렇다 보니 기름값과 디젤 가격이 치솟아도
개인이나 기업은 당장 소비를 쉽게 줄이지 못한다.  수요가 꺾이지 않으니 제품 가격은 계속 오르고,
이 걷잡을 수 없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중앙은행은 금리를 인상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금리가 오르면 정부가 갚아야 할 국가 채무의 이자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이는 다시 재정 적자를 심화시키는 최악의 악순환을 낳게 된다.

결과적으로 트럼프노믹스는 거대한 정책 페키지는 호기로운 외침과 달리 부채를 전혀 통제
시키지 못했다.  지정학적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쇼크까지 겹치면서 미국의 재정 적자는 결국
베센트 장관의 공약 (3%) 을 비웃듯 GDP 대비 6% 라는 최고치를 다시 경신하고 말았다.

연준의 반기와 껶이지 않는 불확실성 ( AI와 지정학 )

트럼프노믹스가 미국의 재정 적자를 눈덩이처럼 부풀리는 동안, 금융 시장의 안정을 책임
지는 재무부와 중앙은행 (연준)은 나름의 영향력을 발휘하며 폭주를 막아보려 애썼다.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며 정부의 이자 부담이 극에 달하자,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은 국채를 다시 사들이는 ‘바이백(buyback)’ 같은 기술적 도구를 동원해
시장을 진정시키려 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재정 적자 구멍이 워낙 컸기에 이러한 임시방편은
역부족이였다.

더 극적인 반전은 중앙은행에서 일어났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케빈 위시 연준의장은
백악관의 강력한 금리 인하 압박을 정면으로 무시했다.   그는 ‘ 인플레이션이 너무 높다 ‘ 라며
물가를 잡기 위해 오히려 금리를 0.25% 인상하는 결단을 내렸다.  이 조치 역시 시장의 뜨거운 열기를
식히기엔 효과가 미미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정부의 국채 이자 부담을 더욱 키웠다는 것이다.

이란 사태로 촉발된 에너지 쇼크의 장기화와 고금리 조차 무력하게 만드는
거대한 ‘ AI 투자 열풍’ 앞에서는 연준의 브레이크도 힘을 쓰지 못한 것이다.

상황이 이쯤 되자 백악관은 새로운 메시지를 던지기 시작했다.  AI 산업을 차세대 동력으로
삼아 미국의 경제 성장폭을 대폭 넓히면, 폭증한 적자 규모쯤은 상대적으로 작아 보일 것이라는
낙관론이다.

하지만 시장의 시선은 냉정하다.  과거 2000년대 초반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닷컴 버블’ 의 역사처럼, 언제든 AI 버블이 꺼지고 과잉 투자의 부메랑이 날아올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정부의 호언장담은 시장에 전혀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

시장의 법칙을 무시한 ‘ 파괴자 ‘ 의 정치 구호

재무장관과 연준 의장이 각자의 위치에서 통화 정책과 기술적 수단을 총동원해 재정 위기를
해결하려 몸무림쳤지만, 결국 트럼프 정권의 본질적인 기조 앞에서는 명확한 한계가 있음을
이번 사태는 잘 보여주고 있다.  진짜 강력한 카드를 쥐고 있는 백악관이 경제학의 법칙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하듯, 트럼프 대통령은 다가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또다시 포퓰리즘 공약을
던졌다.  이번 선거에서 공화당이 상.하원을 다시 장악하면 모든 성인에게 1인당 5,000 달러씩
현금을 지급하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그는 이 공약으로 인해 무려 2조 달러의 재정 적자가 또다시
추가된다는 경고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시장의 흐름과 국가 재정의 건전성을 거역해서라도,
의회를 장악해 자신의 정치적 목적만 달성하면 그만이라는 태도다.

결국 경제를 살리겠다며 화려하게 시작했던 트럼프노믹스는 현실 경제를 풍요롭게
만드는 정책이 아니였다.   오히려 거대한 시장의 법칙을 망가뜨리는 불확실성만 키우는,
오직 표를 얻기 위해 설계된 ‘ 파괴자’ 의 정치 구호였을 뿐이다.

그 무색해진 화려함의 대가는 이제 고스란히 미국 국민들의 몫으로 남게 되었다.